안녕하십니까
얼마전 동학농민군 처형장소에 관한 글을 올린 진짜 농민입니다.
논에서 일손을 잠시 멈추고 농업정책관련 서류작성을 위해 컴퓨터 앞에 있습니다.
역사는 구술과 문서적 자료로 남아있죠
저는 구술적 자료에 의한 의견을 제시 했습니다.
지금의 한전앞 5일장이 열리는 넓은 터는 지금으 도로보다 약간 높았습니다.
볼링장 위 월성보양탕주변부터 한전사거리 주변을 칠거리라고 불렀습니다.
칠거리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
1, 일곱개의 길이 있다는 의견
2, 옻칠을 생산할 수 있는 곳
3,버리다 내치다
입니다.
당시 일곱개의 길도 없고
옻나무도 없었습니다.
어려서 부터 들어 왔던 이야기 입니다.
이곳 어른신들은 동학농민군 처형장소라는 것을 늘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여 동학 이후 일제강점기때 축협마트 주변에 전염병 사망자들을 시신을 버리듯 내치듯 매장한 지역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인가 내치는 곳 칠곳 있었다는 것입니다.
꽃상여가 넘어 가는 지역입니다.
이곳은 지금은 상가 밀집한 지역이지만 70년 중반까지는 매우 한적한 곳 입니다.
입으로 전해지는 사실들이 정확성의 한 예로 알랙스 해일리의< 뿌리>라는 소설에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알랙스 해일리는 아버지의 구술 듣고 선조의 고향땅 아프리카를 방문해 아버지의 구술이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정확한 것에 대해 매우 놀랐다고 했습니다.
이젠 이시기에 동학농민혁명을 논하기에 적절한 정치적 시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