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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의 죽음, 그리고 단식농성 들어간 경찰청 공무원

작성자 : 성관연봉제 작성일 : 2017.12.12 15:19:47 조회수 : 1184
"얼마 전 충주에서 여경이 스스로 목숨을 던졌어요."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곧장 기자에게 '혹시 그 사건에 대해 아시는가'라고 물어왔다. 경찰조직에서는 인사철 즈음에 여러 투서들이 나돈다고 했다. 이연월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하 공노총) 위원장은 "소속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투서나 정황적 증거가 없는 경우 대체로 (감찰쪽에서) 조사를 잘 하지 않는다"고 운을 뗐다. 그는 "감찰쪽에서도 나름대로 실적을 내야하니까, (숨진 여경의) 집까지 쫓아다니면서, 캠코더로 일거수 일투족을 찍고 그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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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감찰쪽에서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리한 조사를 했고, 해당 여경의 죽음까지 이르게 했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현장에서 일하는 경찰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이 위원장은 말했다.

그의 어조는 어느새 올라가 있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공노총 사무실에서 이 위원장과 마주 앉았다. 그는 11일 아침부터 세종시 인사혁신처 앞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간다고 했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고 했다. 정말 할 말이 많아 보였다.

- 왜 지금 무기한 단식 농성이라는 선택을 하게됐나.
"(한숨을 내쉬면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일자리대통령 등을 강조하면서 공공부문에서 성과주의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실제로 공기업을 비롯해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 등이 공식으로 폐지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공공부문 성과주의 핵심인 '공무원의 성과연봉제'에 대해선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경찰의 무리한 감찰 실적주의에 여경이 목숨을 잃었다"

- 사실, 지난 6월 정부에서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폐지를 공식화해서, 공무원도 당연히 포함돼 있는줄 알았다.
"그렇지 않다. 공공부문은 크게 두갈래로 보면 된다. 실제 각 중앙부처와 자치단체, 경찰 등 공무원 조직과 함께 여러 공기업을 비롯한 공공기관 등으로 돼 있다. 지난 박근혜 정부시절에 공무원 성과연봉제를 4, 5급까지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공무원 사회의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이었다. 당장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 당장 내년부터 4, 5급까지 성과연봉제가 확대 실시되면, 국민들에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미 공무원 성과주의 도입으로 그 폐해를 국민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알게 모르게 공공부문에서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어왔다. 경찰의 치안부터 사회복지 서비스 등에서 다양한 공공 서비스에서 국민들은 제대로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자치단체의 사회복지 분야가 대표적이다. 예를들어 복지공무원이 자신이 맡고 있는 지역의 시민을 돌봐야하는데, 해당 시민의 상태에 따라서 시간 등에서 유동적일수 밖에 없다. 그런데 하루에 몇명을 보살폈는지, 성과위주로 현장을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또, 학교에 전담 경찰관을 배치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학교 지킴이로써, 아이들과의 소통과 계도 보다는 SNS 등에 '좋아요'가 얼마나 늘었느냐를 따지고 있다."

"공공성에 맞춘 대국민 서비스보다 개인 가시적 성과에 내몰려"
이 위원장은 허탈해 했다. 정작 국민을 위한 '공공성'은 온데 간데 없고, 오로지 개인들의 가시적 성과에 내몰리거나 집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같은 공무원 사회의 성과주의로 오히려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들"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을 좀더 옮겨 본다.

"지난 1990년대 후반에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서 '효율성', '성과' 등이라는 말에 모두 휩쓸린 때가 있었잖아요. 일반 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이...공공부문도 마찬가지였고, 고위직 공무원 중심으로 꾸준히 '성과주의'에 따라 움직여왔어요. 정부나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이를 빌미로 '공무운 길들이기'에 나섰고, 중-하위직까지 그대로 내려왔어요."

- 성과주의에 대한 폐해를 일부 인정하더라도, 국민들 사이에선 공무원의 '철발통', '무사안일주의' 등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 아니냐고도 한다.
"그동안 정권 차원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해 왔다. 물론 모든 공무원들이 잘하고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잘못된 공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사실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개인적 일탈을 빼고, 공무원이 정말 국민을 위한 공공서비스를 제대로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단지 정권 입맛에 따라, 공무원 조직을 좌지우지 하려고 해선 안된다."

그러면서, 이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기대를 많이 했다고 했다. 또 지난 3월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문 대통령이 공노총 출범식 현장에 직접 참석해 "여러분이 내 주신 숙제를 해왔다"는 것. 공노총이 추진 중인 11대 추진과제의 핵심인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성과평가제를 즉각 폐지 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실제 그는 기자에게 문 대통령의 당시 발언 영상을 직접 보여 주기도 했다. 그 영상에서 문 대통령은 "공공 부문의 성과연봉제, 성과평가제를 즉각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전국 각지에서 온 1만여 공노총 조합원들은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다. 이어 지난 6월과 9월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등에선 성과연봉제 폐기를 공식화했다.

문 대통령 후보시절, 공노총 출범식장에서 "공공 성과연봉제 즉각 폐지"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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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무원의 성과연봉제 등을 맡고 있는 인사혁신처의 움직임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이 위원장은 "공무원 성과급 제도 개선을 위해 인사혁신처는 공노총 등과 어떠한 의견수렴 자리 조차 만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나마 김판석 인사혁신처장이 공무원 성과연봉제에 언급한 것이 지난 8월 출입기자들과 간담회 자리에서다. 김 처장은 당시 "5급이상 관리자부터 고위직까지 성과연봉제를 세련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면서 "6급 이하까지는 확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는 결국 공무원 성과급제가 폐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재확인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원래 경찰청 소속 공무원이다. 지난 98년부터 여성으로 노조의 전 단계인 직장협의회를 만들고, 노조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경찰쪽으로부터 "빨갱이가 조직에 들어오려 한다"면서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고 회고했다.

노조활동만 20여년이 돼가는 그는 공노총의 첫 직선 여성 위원장이기도 하다. 작년 8월말 기준으로 공노총 소속 조합원은 15만5000여명에 달한다. 경찰청, 교육부, 행정안전부 등 국가공무원을 비롯해 서울교육청 등 전국 교육청 공무원, 서울특별시청 등 주요 광역, 시군구 공무원 등이 모두 가입돼 있다. 단일 공무원 노조로는 최대 조직이다.

인터뷰 말미에. 이 위원장은 "몇년 전에 단식을 5일동안 한 적이 있었다"면서 "이번엔 어떤 시간도 두지않고, 정말 목숨을 내던진 여경의 심정으로 단식에 임하려고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대통령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고, 해결될때까지 (단식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내가 쓰러져도, 의료조치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목소리는 진중했고, 결의에 차 있었다. 11일 아침, 서울과 경기권에 올 겨울 들어 최고의 한파가 몰아닥쳤다. 그의 목숨을 내건 단식은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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