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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엾은 젊은이들에게

작성자 : 우리힘 작성일 : 2005.01.24 22:22:25 조회수 : 1079
이 천박한 시대의 가엾은 젊은이들에게 (우리힘 닷컴 퍼옴)
부조리한 사회 구조와 저출산의 역학관계에 대해서 [ 은적산방 ] 2005/01/22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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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가보자 우리힘 닷컴 아무데나 쿡)

지금 대한민국은 단군이래 볼 수 없었던 희귀한 풍습이 무슨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남의 나라(구체적으로 미국)에 가서 아기를 낳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젊은 부부들이 자신들만의 인생을 즐기기 위해 아예 아기 낳는 것을 포기한 일이다.

전자를 '원정출산'이라고 하는데 과거와는 달리 돈 많고 빽 많은 집단뿐만 아니라 중산층 서민들까지 이 행렬에 열성적으로 동참하고 있다고 한다.
원정출산이 이렇게 인기를 끄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교육문제와 병역문제(아들을 낳을 경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아기를 낳으면 자동적으로 미국 국적을 갖게 되므로 나중에 유학이나 병역 문제에 직면했을 때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구미가 당기는 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최근에 한 신병훈련소에서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보라.
군기를 잡는다고 수 십명의 장병들에게 인분을 먹게 했다는 뉴스가 어제 쓰나미처럼 전국을 강타했다. 군대에 아들을 보낸 어버이들의 분노와 한숨 소리가 천지를 뒤엎고 있다.
"미안하다, 아들아! 이 아버지가 못나서, 돈 없고 빽이 없어서, 너를 군대에 보내 이 고생을 시키고 있구나!" 라는 자조적인 울부짖음 소리가 사방에 가득하다.

아직은 어리지만 두 아들을 기르고 있는 글쓴이 역시 이 소식을 접하고 나서 머리카락이 거꾸로 서고 등골이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와 억울함과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군대에서 깎지끼기, 원산폭격, 뺑뺑이 돌기 등등 온갖 기합을 다 당해보았지만 '인분'을 손으로 찍어먹는 벌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러고서 어떻게 사병들의 사기가 오를 수 있겠는가? 이러고서 어떻게 아들 가진 부모들이 마음 편하게 자식들을 군대에 보낼 수 있겠는가?
이런 황당한 일을 보면서 어떻게 예비 부모들이 아기를 낳아 기르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가?

몇 일전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우리나라의 신생아 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면서 저출산 문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평균수명은 길어지는데 신생아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회는 점점 고령화되어가고 필연적 결과로서 동시에 역동성을 상실한다. 요즘 아이 울음소리가 그쳐버린 농촌을 한 번 상상해 보라. 이런 식으로 저출산 추세가 계속된다면 지금 젊은이들이 없어 활력을 잃고 몰락해 가고 있는 농촌의 모습이 바로 우리나라의 미래라고 해도 지나친 주장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젊은이들은 왜 아기를 낳지 않으려 할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주장을 자세히 들어보지 못해서 확실한 이유를 알지는 못하지만 내 경우를 참고로 했을 때 나름대로 짐작이 가는 것이 몇 가지 있다.

내 짐작으로는 젊은이들이 아이 낳기를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감의 결여'이다. 이 자신감의 결여는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세상에 대한 것이다. 나 하나의 몸도 제대로 건사 못하는데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도저히 자신이 없는 것이다.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은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대변혁이다. 일종의 혁명과도 같은 일이다. 알에서 부화한 새가 그 동안 어미 새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다가 스스로 나는 법과 먹이를 잡는 법을 배운 후 마침내 새 둥지를 틀고 어미 새로부터 독립하는 단계이다. 물론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즉 스스로 부모가 되어 새 생명을 보호하고 독립적인 인격체로 성장하도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의미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에는 당연히 물심 양면으로 부모의 희생이 요구된다.

자, 이 시점에서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부모의 품에서 떠나 새 둥지를 틀만큼 독립적인 인격과 능력을 갖추었는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기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 희생을 감수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렇게 모든 상황이 불확실하고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 아이를 낳아 내보낼 자신이 있는가? 지금까지 가치의 혼돈 때문에 힘들었고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고민하느라 버거웠는데 아이를 낳아 또 다시 이런 고통을 물려주어야 한단 말인가?'

십 년 전 첫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정말 나는 자신이 없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세상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불확실성 때문이다. 농촌 공동체 사회가 무너지고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후 현대인들은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의 생활전선에 내몰렸다.
직장을 얻기 위하여 친구와 경쟁하고, 직장 내에서는 동료를 누르고 승진하기 위하여 눈물겨운 투쟁을 벌인다. 아파트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면서도 이웃들은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왕래를 귀찮아한다. 벽 너머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도 눈치채지 못한다. 벽 너머에서 어린 아이가 굶어 죽어가도, 독거 노인이 쓰러져 죽어가도 이웃들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빈부의 격차는 심화되고 극도의 빈곤과 인간소외는 자살을 부추긴다. 생태계는 파괴되고 자연은 병들어가고 있다. 이상기온과 지진과 해일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세계 경제는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얼음조각처럼 위태롭고 전쟁은 그치는 날이 없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은 38선을 경계로 하여 서로 총부리를 겨눈 채 총검술과 사격훈련을 멈추는 날이 없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지역을 나누고 패거리를 만들어 온갖 증오와 저주를 일삼는다. 하루가 멀다하고 공직자들과 기업들의 부조리와 부패가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공평하고 투명한 사회 시스템 구축은 아직 멀기만 하다. 이런 불확실한 세상에 내가 과연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세상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현대 사회의 시스템 하에서는 한 인간이 태어나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회생활에 능동적으로 적응할 수 있게 하는데 걸리는 기간이 너무 길다. 남자의 경우 병역을 마치고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보통 26 -27년이다. 다행히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게되면 그나마 났지만, 요즘처럼 불황기에 직장을 얻는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취업 준비하느라 바쁘게 몇 년 보내게되면 금방 서른이 넘는다. 서른이 되면 나이에 대한 부담이 전에 없이 커진다. 오죽하면 어느 시인이 이렇게 말했을까?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고.

여기에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데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더욱 망설여진다. 국가의 보육 정책은 사실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보육정책을 굳이 말한다면, '너희들이 좋아서 결혼했으니 너희들 알아서 애 낳아 길러라' 정책이다.

맞벌이 부부로 은행에서 대출한 돈으로 셋방 얻어 시작한 나는 정말 이 나라에서 아이 낳고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고 있다. 옛날에는 할머니들이 손주들을 키워주기도 했었지만, 요즈음은 많이 변했다. 할머니들도 자기 시간 가지려고 하지 손자 손녀들 맡아 키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혹 운이 좋아서 할머니한테 아기를 맡겨 기른다고 해도 아이 잡으러 다니다가 발이나 삐끗하는 날이면 평생 씻을 수 없는 불효를 저지르게 된다. 형제들한테도 원망듣기 십상이고. 그래서 대부분 수 십 만원을 들여 유모에게 아기를 맡겨 키우거나, 종일 반 유아원에 맡기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거 장난이 아니다. 보모가 아기를 몇 개월 보다가 사정이 생겨 못 보는 날이면 다른 보모를 알아봐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몇 번 바뀌면 아이의 정서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고 이런 엄청난 보육비에 대해서 국가나 사회가 관심이 있느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모든 육아 비용을 개인이 다 부담해야한다.

더욱이 직장 여성들은 아기를 갖는 순간부터 엄청난 고민과 고비용의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심지어는 퇴사 압력까지 직·간접적으로 받는 경우가 많다. 열악한 육아환경과 엄청난 육아비용. 거기다가 아이가 심하게 아프기나 하는 날이면, 그 가족의 일생은 거의 끝장이다.

아이가 커서도 문제다. 교육비 같은 것은 제쳐놓고라도 아들인 경우에는 군대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군대에 갔다 온 사람들은 다 안다. 군대라고 하는 집단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비합리적인 집단인지.
"까라면 까!"
이 한마디로 모든 이성과 감성을 억압하고 묵살한다. 재수 없으면 아무 죄도 없이 단체로 기합 받고 두들겨 맞는다. 일년에 수 천명의 장병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통계도 나왔다. 안 미치고 사는 게 이상할 정도의 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그 정도는 봐줄 만하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말이다. 그런데 누구는 잘도 면제받는다. 몸무게 미달로, 가짜 허리디스크로, 이중 국적을 이용하여, 기타 등등... 대부분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의 자식들이다.
농어민, 도시근로자, 노동자 서민들의 자식들은 그들을 대신하여 군대가서 죽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고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다.

모든 사회 시스템이 부실하고,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나라. 지금 젊은이들이 아이 낳기를 꺼리고 중산층이 원정 출산하는 현상을 나는 어느 정도 이해한다. 정부는 무조건 젊은이들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윽박지를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아 기를만한 사회환경을 만들어주고 또한 육아를 위한 각종 복지정책을 기획하여 당장 실행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젊은이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특히 이 부조리하고 불공평한 사회 구조를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구조로 바뀌어져야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또 바꾸기 위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애쓰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묻고 싶다.

그대들이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는다면, 과연 그 변화된 세상을 누구에게 물려줄 것인가?
그 변화된 세상에서 살 후손들이 없다면, 과연 그대들의 올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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